기사최종편집일 2024-03-2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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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스트리밍과 페이 투 윈(pay to win) [K-POP포커스]

기사입력 2020.06.23 15:30



‘페이 투 윈’(pay to win)이라는 용어를 아시는가.

문자 그대로 ‘지름’이 승리와 직결된다는 표현이다. 주로 게임업계, 그중에서도 모바일게임업계에서 자주 쓰는 용어다. 부분 무료화 모델이 정착이 되면서 자주 쓰게 된 표현.

‘리그 오브 레전드’ 유저들 중에는 골드 차이로 이기는 게임을 볼 때 ‘돈으로 팬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는데,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워딩이다.

근 몇 년간 음원차트는 여러 가지로 논란의 대상이었다.

음원차트 시장은 소위 ‘기계픽’이라고 불리는 음원 사재기 의혹, 거대 아이돌 팬덤의 음원 스트리밍이 적절하냐 아니냐 하는 등의 이야기들로 늘 뜨겁다.



최근 국내 1위 음원차트인 멜론에서 실시간 차트를 폐지한다고 밝히면서, 이 논쟁들이 사실상 시한부에 접어든 상태로 보이긴 하는데, 개편 후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진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일단은 지켜봐야 한다.

지금 논쟁들도 보다보면 건전한 토론 이상으로 감정싸움이 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지금의 논의들이 ‘고등’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음원차트라는 서비스가 정착하기 이전엔 ‘음원 불법다운로드가 정당하냐 안 하냐’로 싸웠기 때문이다. 어린 독자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온라인 음원 다운로드 사이트들이 막 만들어지던 시기에 ‘무료 불법 다운로드가 정당하다’는 목소리가 제법 컸다. 안 좋은 노래에 돈 쓰기 아깝다나.

<※참고기사 : ‘불법 다운로드 논쟁, 다시 수면위로?... 슬래시닷, 공방’ 아이뉴스24  2004.10.12.>


심지어 무료 불법 다운로드 옹호하는 아티스트들을 ‘개념 아티스트’라고 치켜세우는 흐름도 실제로 존재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거 가지고 논쟁하진 않으니 발전을 하기는 한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나름 발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고.


<요즘은 냅스터 안다고 하면 아재 소리 듣는다>

‘냅스터’ 같은 음원 불법 공유 서비스들이 살아있던 시절을 기억하는 유저로서 현대의 음원차트라는 서비스는 참 기묘한 존재다. 노래 내서 성공하고 싶은 아티스트들과 노래에 적게 돈 쓰고 싶은 소비자들의 딱 중간 지점에 위치한 서비스라고 할까.

불법 다운로드 시대 이후, 현대의 음원차트는 노래에 돈 적게 쓰고 싶어 하는 대중들에게 꽤나 괜찮은, 매력적인 변명거리를 제공했다.



<음원 저작권 수익률 분배 같은 이슈를 뺀다고 해도, 음원차트들의 한달 무제한 스트리밍권 같은 상품이 가수들에게 그렇게 큰 돈을 안겨주기는 힘들다>

‘너가 이 노래를 들어서 노래의 순위가 높아지면 (비록 곡 하나에 쓴 돈은 적어도) 그 아티스트의 성공에 기여하는 거야’

1. 노래가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면

2. 사람들이 ‘인기가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3. ‘음원 강자’라는 수식어와 함께 기사가 나가고, 온오프라인에서 입소문이 나며

4. 높아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아티스트는 방송, 행사, CF 등을 돌면서 막대한 수입을 얻는다.

위 사이클이 음원차트 서비스 정착 이후 이판을 성장시킨 핵심 논리다.

사실상 기업과 기관이 돈을 소비자 대신 내는 형태(행사, CF 등을 통해)로 커온 셈인데, 나름 한동안은 이게 괜찮아 보였다. 절묘한 신의 한수처럼 보이기도 했고.

문제는 인간은 성공의 확률을 높이고 싶어 하는 생물이고, 가능하다면 성공을 ‘확정’시키고 싶어 하는 생물이라는 것. 이러한 심리가 사실상 (기계픽이라 불리는) 음원 사재기를 하게 되는 핵심 심리이다.

아이유, 박효신, 지코, 장범준 정도 되는 거 아니고서야 내는 음원마다 다 잘된다고 보장할 수 없으니. ‘가짜로 만든 성공이라도 진짜처럼 보이게 만들면 그게 바로 진짜다’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음원 사재기를 실제로 시도한 아티스트는, 게임의 룰에다 ‘페이 투 윈’을 시전한 것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차트 공신력의 훼손.

기계픽과 비스무리하게 비판 받고 있는 거대 팬덤의 음원 스트리밍 같은 경우에는 위에서 언급한 ‘돈으로 패기’에 가깝다.

내 아이돌 컴백하게 되면 준비하는 게 음원총대 구하기, 계정 확보하기, 다운로드 및 선물 총공 실탄 확보하기 뭐 이런 건데, 이게 뭔지 잘 모르는 분들은 그냥 ‘시간과 자금을 때려 박는 행위’라고 이해하시면 된다.



<차트순위는 돈으로 살 수 있으며, 만약 사지 못했다면 그건 돈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음원 사재기가 게임의 룰에 손을 댄 ‘페이 투 윈’이라면, 팬덤 스트리밍은 노래 감상을 ‘노동화’한 형태의 ‘페이 투 윈’이다.

굳이 대중과 팬덤을 둘로 나눈다면, 대중은 사람이 많고, 팬덤은 쓰는 돈이 많다. 그리고 아이유처럼 ‘대중이 팬덤이다’라고 말할 정도의 레벨이 아니라면, 후자 쪽에서 이기는 그림이 ‘실시간차트에선’ 많이 연출된다.

게임계나 음악계나 대다수의 라이트유저들은 ‘페이 투 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페이 투 윈’에 반대되는 표현이 ‘플레이 투 윈’(플레이를 통해 이긴다)인데, 라이트 유저들이 선호하는 건 이쪽이다. 게임은 인게임 플레이로, 음원은 ‘많은 유저수’로 이기길 원한다.

두 업계가 ‘페이 투 윈’ 경향이 짙어진 이유는 많은데, 그 많은 요소들 중 ‘소비자들의 극단적인 소비 형태’도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데 적지 않게 한몫했다.

앞서 21세기 초반 음원 불법 다운로드 시대를 이야기했는데, 같은 시기에 게임업계도 똑같이 불법 다운로드로 고생했다. 음원계에 ‘냅스터’가 있다면 게임계엔 ‘와레즈’가 있었다.


<수많은 게임 복돌이를 탄생시킨 와레즈 사이트. 이거도 안다고 하면 아재 소리 들을 것이다>

패키지 게임 시대에서 월정액 기반의 PC온라인 게임 시대로, 
월정액 기반의 PC온라인 게임 시대에서 부분 유료화 PC게임의 시대로,
부분 유료화 PC게임의 시대에서 부분 유료화 모바일 게임의 시대로

21세기 한국 게임판의 큰 흐름은 위와 같이 변화했는데, 적어도 패키지 게임 시대가 망한 건 부인할 수 없이 그 당시에 데몬(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용 디스크 이미지 에뮬레이터. 게임CD 안 사도 게임 즐길 수 있게 해주던 프로그램이다) 쓰고 ‘와레즈’ 쓰던 유저들 탓이다.



<어렸을 때 불법 다운로드(월희, 페이트 스테이 나잇 등등)로 꿀 빨았던 유저들을 부분 무료화로 혼내주고 있는 모바일 게임 ‘페이트 그랜드 오더’>

패키지 게임이 망한 이후 게임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은 일단 무료로 게임에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 접속한 유저들이 현질하게 만드는 형태로 진화했는데, 그게 현대의 부분 무료화 모델(VIP 시스템, 랜덤 가챠 등등)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유저들이 기꺼이 돈을 지출하는 형태가 이 형태이기 때문.

패키지 게임은 복돌이(불법 공유+다운로드)로 즐겨놓고 모바일 게임 아이템 강화에는 미친 듯이 현질한다는 게이머들의 자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현대 아이돌의 비즈니스 모델도 큰 틀에서 보면 위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일단 무료, 혹은 무료에 가까운(음원, 뮤직비디오, 직캠, 유튜브 콘텐츠, 브이앱 등등) 콘텐츠로 아티스트의 매력을 어필하고, 충성도를 높여서 ‘지르게’(굿즈, 음반, 콘서트, 유료 팬클럽, 유료 SNS 등등) 만든다.

심지어 가챠라 불리는 확률형 과금이 있는 것도 똑같은데, 게임업계에선 아이템 강화, 펫 강화 등에 가챠를 붙여놨고, 아이돌업계에선 팬싸인회 응모에 가챠를 붙여 놨다. 이유는 역시 단순하다. 사람들이 여기에 돈을 쓰니까.

아이돌업계의 팬덤 중심 성장과 발전은 달리 말하면 소비자의 직접 소비를 유도하는 형태의 발전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국내외 팬덤(특히 해외 팬덤)을 압도적으로 성장시키면, 그리고 그 막강한 팬덤에 직접 소비를 유도하면 어지간한 간접 소비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정상급 아이돌이 증명했다. 그리고 팬덤의 직접 소비 능력이 엄청나게 크면 행사-CF 같은 간접 소비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사실 역시 함께 증명됐다. 대표적인 예는 역시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이 ‘방방콘’ 1회로 발생시킨 매출이 약 200억. 국내 행사-CF 1년 내내 돌아도 따라잡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현대 음원차트의 팬덤 스트리밍 논쟁은 바로 이 충성도 높고 구매력 높은 팬덤을 보유하고자 한 케이팝 기획사들-케이팝 아티스트들이 굴린 스노우볼이기도 하다. 팬덤들은 내 아이돌들을 성공한 아이돌로 만들어하고 싶어 하고, 그건 음원차트에서도 마찬가지니 스노우볼이 이쪽으로도 구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에 대한 비판 역시 물론 당연한 것이고)


<최근 인기 트로트가수 팬덤들도 팬덤 스밍을 하는 경향이 많이 보이는데, 이거 보면 사람 심리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서 계속 게임업계와 음원업계(특히 아이돌)의 공통점을 계속 이야기했는데, 글 마무리하면서 둘의 차이점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게이머가 게임에 현질하면 어쨌든 강화에 성공한 아이템은 내 손에 들어온다. 잔고는 줄어들었어도 내 캐릭터에 강화된 ‘진명황의 집행검’을 쥐어줄 수 있기는 하다는 것.

팬덤 스밍의 경우에는 사실 내 돌이 좋은 성적 나왔을 때 보람 잠깐 느끼는 거 빼곤 남는 게 없다. 그렇게 스밍해도 엄밀히 따지면 그걸로 최대 이득을 보는 건 음원유통사이지 내 아이돌은 아니고. 그 사이에 내 시간, 내 잔고는 그대로 증발.


<스텔라장이 부릅니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만약 멜론차트의 차트 개편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라이트 유저들에게도 좋은 일이 되겠지만 거대 아이돌 팬덤들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라이트 유저들은 듣고 싶지 않은 아이돌 수록곡을 차트에서 안 봐서 좋고, 팬덤 입장에서도 매일 매일 차력쇼하는 삶을 살지 않아도 되어 좋고.

다만 차트 개편한다고 해도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사실 멜론은 이전이 몇 번 차트개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결과 걸그룹들의 차트 진입만 어려워졌다. 차트가 고인물이 되는 것 방지, 음원 사재기 논란 방지 같은 건 전혀 못했다.

그리고 실시간 차트의 유일한 순기능이 이름값 없고 팬덤 없는 가수가 차트에 내 이름 올릴 확률이 조금이나마 높은 차트라는 점인데, 이게 없어졌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긍정적으로만 예상하긴 힘든 게 사실이다.

어떤 각도에서 봐도 현대의 음원차트, 음원 서비스들은 변화의 기로 앞에 서 있다. 21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이 시장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관심이 커진다.

tvX 이정범 기자 leejb@xportsnews.com / 사진 = 위키백과-인터넷 커뮤니티-연합뉴스-넷마블-딜라이트 웍스-스텔라장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 뮤직비디오-빅히트-멜론-픽사베이-엑스포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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